행복한 이야기

 
작성일 : 03-01-22 00:52
안쪽으로의 여행
 글쓴이 : 토토♬
조회 : 699  
서영은의 '안쪽으로의 여행' 중에서..(2)




시장이 먼 산동네, 구멍가게 하나는 생겨날 법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논마지기를 팔아 상경한 부부,
처음 시작한 장사였다.
시골훈장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운
실력이 있었던지라, 주인은 '복이 오라'는 뜻을 담아
가게 이름을 지었다.
길가로 면한 방의 벽을 터서 차린 가게 안쪽에는
양초 성냥 라면 과자에서부터 아이들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처마를 덧대어 바깥에 차려놓은
상판 위엔 두부에서부터 콩나물
때로는 짠 생선까지 진열해놓고 팔았다.
동네 아낙들은 구공탄불에 밥 안쳐놓고 잠깐
문 열고 나와 두부나 콩나물, 시금치를 사갔고,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은 아이들
군것질거리나 오징어와 소주를 사러 가게에 들렀다.
코 묻은 돈을 들고 10원짜리 라면땅을 사러오는
아이들도 단골이었다.
장사는 주로 아낙이 했다.
심덕이 넓은 남편은 이내 동네사람들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주는 길로 나서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아낙은 공책 하나로 치부장을 만들어
출납을 적긴 했으나,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네사람들이 임의롭게 여기면서 외상이 많아지자,
그 공책은 외상 장부가 되었다.
사람들이 찾는 대로 가게 꼴을 갖추었으면서도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계속 밑지는 중이었다.
그에 반해 바깥양반은 심덕을 칭송하는
동네사람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반장 일까지 보게 되었다.
물건 주문과 동회와의 이런저런 연락 때문에
전화 가설이 불가피했다.
복래상회에 설치된 전화는 그 동네에서 유일한 것이었다.
아침이면 교모를 쓴 의젓한 소년이
가게를 나와서 학교로 갔고, 해가 높이 뜰 때쯤이면,
눈썹이 짙고 입술이 꽃잎처럼 고운 계집아이가
소꿉을 들고 가게 앞에 나와 앉아 혼자 놀았다.
계집아이는 학교에 갈 나이가 지났음에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
한낮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서
아낙이 밀린 빨래를 하고 있노라면,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것은 그 계집아이였다.
산동네를 지나던 스님이 물 한 잔 얻어 마시려고
집 안을 기웃거리다 혼자 놀고 있는 계집아이를
발견했다. 어깨를 툭 치고 나서야 얼굴을 쳐드는
아이의 눈빛이 어른처럼 고즈넉했다.
아뿔싸, 스님은 집 안을 들여다보며 인기척을 냈다.
물 묻은 손을 치마허리에 닦으며 아낙이 나왔다.
아이를 위해 불공을 드려주겠다는 스님의 말씀에
아낙은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사양했다.
산꼭대기에 생긴 교회의 전도사님 역시
따님을 봐서라도 교회에 꼭 나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때에도 아낙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장사는 밑지고 있고,
남편은 돈 한 푼 안 생기면서 동네일로 분주하고,
말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딸은
커가면서 부모의 큰 근심이 될 것이다.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물건을 파고 사는 타산행위로 쪼개어지지 않는
순전한 마음, 근심과 걱정거리를 한 무더기 짐 지고
살면서도 넉넉한 마음.

<서영은의 '안쪽으로의 여행' 중에서, 문용숙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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