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야기

 
작성일 : 08-06-21 13:12
나무아저씨의 행복한찻집7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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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결혼과 카스트

 

1993 2월 대학을 졸업하고, 3월에 인도행 타이항공를 탔다 - 당시엔 직항이 없었다. 유학은 아니고, 그냥 인도가 나를 불러서였다. 그 무언가가 나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잠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영어나, 범어를 좀 더 공부해 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선 길이었다. 마침 1990년에 있었던 국제캠프(International Peace Camp)에서 사귄 인도친구도 있고 해서 놀러 간다는 기분으로 나섰다

그날 방콕공항에서 7시간 트랜짓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뉴스가 한창 시끄럽다. 봄베이(지금은 뭄바이)의 증권시장에서 폭탄이 터지고 인도 각지에서 테러 소식이 들린다. 뒤숭숭한 마음이 더욱 긴장하게 하였고, 인도공항에 도착하여, 백열등, 누런 불빛아래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도착한 인도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기로 한 인도친구 산제(Sanjay Banerjee)를 한참 찾는데, 공항 앞에는 거지들만 득실거렸다. 정말 내 눈에는 처음에 전부 거지로만 보였다. 그 중 한 거지가 ~(Lee)를 외치며 손을 흔들 때까지는 잠시 멍한 기분이었다.

나의 인도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산제는 아버지가 BBC의 인도협력업체이자, 인도의 뉴스와 모습을 비디오 테잎에 담아 전세계의 재외인도인(NRI-Non Residential Indian)에게 격월로 잡지처럼 (Video magazine) 판매하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은 조그만 광고회사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 인도에서의 첫 한달 가량을 보냈다.

산제는 바로 위에 세살 터울의 누나가 있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데, 누나는 홍콩에서 스타TV(Star TV)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가족, 친지들이 대부분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인도의 신분을 결정 짓는데 가장 중요한 자띠(Jati, 직업).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Cast)는 다분히 신화적이거나 전통성이 강하다. 인도에서 신분을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그 가족공동체가 행하고 있는 생업이다. 그리고 외모를 볼 때 바루나(Varuna, 색깔)가 참고가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신분 내지 계급이 존재하는 셈이다. 근대 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냄으로 지금의 도시에 있는 젊은이들은 이 가장 큰 기준이 된다고 말하지만 결혼이나 가족 중심의 행사에서는 아직도 가족집단의 신분 정도가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다. 더욱이 그 집단이 아직도 상당히 폐쇄적, 배타적이고 세습적이어서 그 영향력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주요 일간지 일요판에는 구혼광고가 몇 페이지를 차지하는 데, 서너 줄로 된 신랑, 신부 후보의 신상과 희망 배우자에 대한 내용이 출신지, 신분정도 등의 기준으로 분류되어 빽빽히 나온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은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라고 하여 카스트 노 바(Cast no bar-카스트 관계없음)를 내세우는 항목도 있는 데, 많은 경우가 재혼이다. 그리고 특히 부모의 직업이 중요시 되고, 미국시민권이나 영주권자들이 인도에서 배우자를 찾는 경우도 상당수 볼 수 있다.

인도에서 사는 동안 대여섯 번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인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신발공장 사장집안의 결혼식에 지인으로 초대받게 되어 델리에서 아그라까지 서너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참석하게 된 결혼식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기다리는 가이드가 그곳에 이틀 동안 머무는 동안 계속 안내를 하였고, 물론 머무는 동안의 모든 비용도 혼주측에서 부담하였다. 현지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빌려 일주일 동안 결혼식을 하였다. 들리는 이야기는 다우리(Dowry, 지참금)로 상당 규모의 부동산과 주식을 받았다고 한다. 타고르의 소설에서도 보았던 내용을 실제로 보고나니 또 다른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있는 집에서는 신부 몸무게만큼의 보석, 황금 등을 지참금으로 보내는 것이 체면이나 사회적 관습이라고 한다. 때로는 다우리 때문에 사건도 일어나지만, 여자에 대한 재산분배형태나 축제적 시혜의 문화적인 다양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도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요즘은 브릭스(BRICS), 친디아(CINDIA)다 하여 인도가 무척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당시만 해도 뉴델리의 한인은 대사관과 상사 그리고 학생 등을 다해도 150여명 남짓해서 몇 달 후에는 서로서로 다 알게 되고 새로 누가 왔다, 누구네 집에 에어컨 샀다- 당시 에어컨이 귀하였고 학생이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필자가 에어컨을 사고 한동안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는 것이 이야기 거리가 될 정도였다.

2006 10월에 가족과 함께 인도를 여행하게 되어 학생시절 신세 졌던 분을 찾아 뵈었는데, 그 분 말씀이 지금은 거주하는 한인이 수 천명이 넘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기업체에서 들어오는 경우도 많지만 개인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인도로 오는 경우도 많아 한인사회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한식당과 게스트하우스, 식료품 수입업체 등도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의 문화와 풍습, 특히 인도인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결국에는 우리들의 가치만을 주장하다가 제풀에 지치게 된다.

아무쪼록 인도에 관심이 있다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맨발로 가라 고 전하고 싶다. 마음을 활짝 열고,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인도의 광활한 대지를 디디고 서서 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진 저 지평선위로 저무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서방정토의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꿔볼 일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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