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야기

 
작성일 : 03-02-10 18:47
김영갑
 글쓴이 : 토토♬
조회 : 614  










































































































































































































































































































































































































































































































































한 사내가 스무살 시절에 제주로 왔다.

그후 오랫동안 제주의 바람은, 오름은, 소리쳐 우는 제주바다는

이 사내를 자주 목격해야 했다.

그 사내는‘도 닦는 마음으로 10년만 보내자’고 제주 행을 결행한 터였는데,

10년을 훌쩍 지나 이제 그 사내의 나이가 마흔을 넘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제주에 홀려,

필름에 미쳐 아직도 제주에서 떠돌고 있다.





제주사진만을 고집하는 댕기머리, 김영갑.

한 사내의 생을 저울에 달아보아 평균율에서 치우치거나 모자라면

우리는 기인이거나 아니면 천치라 부르길 꺼려하지 않는다.

또는 잘 쳐줘야 못난 사내밖에 안된다.

일상적인 삶의 행렬에 그를 세워놓았을 때 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순전히 편하기만 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돌출의 혁명을 꿈꾸고 일탈의 자유로움을 사려 든다.

그것도 아주 값싸게, 아니면 신용카드 긁듯이 무심코.

그러나 마흔 나이를 훌쩍 넘긴 한 남자가 우리에게 외친다.



파도와 오름과 풀잎들, 벌레들과 번민과 증오,

그리고 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외로움을 처절히 세울 때,

내 비로소 자유와 예술의 등 굽은 몸뚱아리에 향유를 바를 수 있었노라고,



결국 제주도는 사랑이었다고,

소름 끼치는 그리움이라고 . . . . .



(정 희 성)







제주에서 열하루째 날입니다.

아침 풀벌레 소리에 눈을 떠서 밤새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듭니다.

마을 한가운데 집이지만 산중 암자 처럼 고요한 숲의 집입니다.

먹고, 자고, 연못 속 들여다보고, 산책 하고..

거짓말처럼 나는 서울에서의 모든 시간들을 잊고 지냅니다.

제주의 하늘, 바람, 바다, 들꽃, 오름, 보이는 것 모두 감동입니다.

이 아름다움은 날마다 나를 설레게 합니다.



오늘도 친구를 기다립니다.

해질 무렵,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 까지가 친구의 촬영 시간입니다.

친구는 이곳에서 십 오년째 풍경만 찍어대는 일명 미친 사진장이입니다.

자기만의 사진을 찍기 위해 짐승처럼 살아온 친구입니다.

고집 불통에 성격도 개떡 같고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를 독종이라고 한 마디로 표현합니다.



그를 좋아하지않는 사람들도 그를 알기는 합니다.

그는 흔들림을 아는 사람이라고,

바람의 흔들림, 들꽃의 흔들림, 그 미세한 흔들림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 새끼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도

그가 아름답다고 말들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었다면 그는 이렇게 많은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에게까지 너그럽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의 흔들림을 외면 합니다.





아쉬움이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작품이나 성격에 대해서

시건방떨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당연한 감동이 있을 뿐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정점에 이른 듯합니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이루어가는 그의 의지가 부럽습니다.

그가 계획하는 갤러리 건축 도면도 보았고,

그 갤러리 정원에 심어질 야생화도 보았습니다.

그가 데려다 함께 살고 있는 소나무, 야생화, 그리고 돌들..



이제 그는 세상에 불만 같은 거 다 던져버려도 될 듯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이제,

마음 그득한 풍경이 그의 가슴에서 걸어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관심과 기대는 다른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기대는 보는 이의 욕심일 뿐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의 기나긴 씨뿌림이 이제 수확기에 들었음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의 기대가 아니라 가만히 지켜봐 주는 일입니다.

한때 그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차라리 허구라고 마음 편히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속 편할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너무 강도 높은 유혹일테니 말 입니다.

친구가 저녁 촬영길에 한번씩 들러갑니다.

친구는 나를 위해 고등어, 갈치, 김치 ,미수가루, 꿀, 김 등등 매일 먹을 것들을 챙겨옵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쫄래 쫄래 그의 촬영길에 따라 나섭니다.

그는 누구네 밭에 어떻게 생긴 소나무가 있고,

어느 소나무가 몸살을 앓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빛이 어느 만큼 있을 때 어떤 오름을 어느 각도에서 찍어야 할 지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그는 앵글을 맞추어 놓고 들꽃을 꺽으며 또 기다립니다.

해, 구름, 바람, 무지개, 제주의 색...

십 수년 동안 기다림으로 틀이 잡힌 그는 기다림이 생활입니다.

불안함이나 초조함이 없습니다.

제주에 관한 한 그는 흔들림 없는 바위입니다.

하늘과 땅이 보여 주는 만큼 그만큼만 가지고 갑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아니 모래도 그는 그 자리에서 앵글을 맞출 것입 니다.

이제 그의 풍경을 보려면 결심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어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그가 촬영을 하는 동안 억새밭으로, 오름으로 걸어 다닙니다.

때로는 한 곳에서 시선을 고장시키고 그 변화를 지켜봅니다.

빛이 있어서 모든 것이 생명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오랜만에 경험 하는 깊은 평화입니다.

마음이 요동 치지 않으니 살 것 같습니다.

떠나와 보니 알겠습니다.

너무도 선명하게 알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내가 얼마나 허약한 사람인지,

내가 무엇인 척 살아온 시간들,

그럼에도 내가 버릴 수 없는 것이 끝끝 내 무엇인지....

나는 지금 참 편한데,

친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나 봅니다.

나의 맑음이 없어졌다고,

총명함이 사라졌다고,

왜 이렇게 아파하냐고,

왜 이렇게 미련 하냐고,

곁에서 지켜 보기가 너무 안쓰럽다고,

나를 보니 화가 난다고...

달래다, 협박을 하다, 또 용기를 주려 애씁니다.



친구는 아직도 내가 용감한 투사인 줄 아나봅니다.

아직도 내가 결심해야 할 무엇이 있다고 기대하나 봅니다.

삶은 달걀하고 활명수 사줄테니 제발 자기가 시키는대로 말 좀들으랍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살랍니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무엇가 설명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친구에게 친절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참 많이 고마워하면서도 결국은 짜증으로 답을 하곤 합니다.

다른 날이 있겠지요,

그런 날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친구가 바다를 보여 주었습니다.

바람도 없이 바다가 고요합니다.

나도 고요합니다.

친구는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 묻지도 않고 일찍 돌아갑니다.

나는 오늘 오래 동안 이 고요속에 있고 싶습니다.

이 아름다움 모두 사실이어서 오히려 나는 아픕니다.



( 박세혜 )





MUSIC: [Italy] Rondo Veneziano ... 'Sinfonia per un addio'

[발췌: 김영갑 홈페이지
http://www.dumo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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