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야기

 
작성일 : 03-04-22 01:53
선재 스님의 봄 나물 예찬
 글쓴이 : 토토♬
조회 : 2,451  

전통사찰음식 전문가 선재스님의 '봄나물예찬'

《“봄에 나물 새싹이 돋기 시작하면 조금씩 뜯어다가 찌개에 솔솔 뿌리거나 쌀 위에 얹어 밥을 해먹고, 조금 더 순이 올라오면 국을 끓이고, 지천에 널리면 경단과 떡을 해먹는 게

불가(佛家)의 음식 문화죠.”봄을 시샘하는 진눈깨비가 흩뿌리던 7일 오전. 전통 사찰음식 전문가 선재(善財) 스님을

그가 운영하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만났다. 계절이 무르익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섭생을 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게 4시간 가까이 함께 머무르는 동안 일관된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겨우내 쌓인 노독 풀어주고 입맛 돌게해

7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동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선재스님이 제철 음식이 보약이라며 봄나물들의 맛을 보고 있다.김동주기자 zoo@donga.com">zoo@donga.com

“봄에는 가래 심화병이 많습니다. 씁쓰름한 맛이 도는 봄나물은 겨우내 쌓인 노독(路毒)을 풀어주고 입맛을 돌게 해주죠.”

머위나물, 씀바귀, 냉이, 돌나물, 돌미나리 등 봄나물을 만지작거리던 스님이 머위나물을 씹어보라고 권했다. 부드러운 줄기를 골라 입에 넣었더니 쓴맛과 독특한 향이 입안에 머무는가 했더니 이내 침이 입안에 그득 고였다.

“침이 고이면서 입맛이 도는 겁니다. 또 침이 많이 나오면 음식을 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나물은 향과 맛이 자연에서 얻은 것만 못하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게 어찌 맛과 영양이 자연의 것과 같을 수 있겠냐는 소리다.

# 불가에선 나물의 향 고스란히 살려

원추리무침. 두릅물김치.냉이무침

“절에서 먹는 나물요리가 맛이 있는 이유는 마늘, 파 등 향이 강한 오신채(五辛菜)를 쓰지 않아 나물의 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오신채 양념 대신 나물 향을 살리는 비법을 일러줬다. 나물이 멍이 들거나 상하지 않도록 수돗물 대신 그릇에 물을 받아 깨끗이 씻는단다. 또 나물을 삶을 때 꼭 소금을 넣고 삶은 나물은 꺼내서 곧바로 차가운 물에 식혀야 나물 향이 고스란히 살아난다는 것.

나물 겉절이를 만들 때는 양념을 따로 따로 넣어가며 버무리면 맛이 골고루 배지 않는다고 했다. 양념을 미리 만들어 놓고 나물과 버무려야 맛이 속속들이 밴다.

스님은 주전부리용 고구마도 옛날 어머니들처럼 전통방식으로 삶는다. 찜통에 넣고 고구마를 삶으면 단맛과 향이 달아나기 때문이란다. 냄비 속에 사발그릇을 엎어놓고 고구마를 놓은 다음 물을 붓고 삶아야 제 맛이 난다는 것. 고구마 삶은 물이 증발되지 않고 사발 속에 고였다가 고구마 속으로 깊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설탕 대신 사과, 감 등 단맛이 나는 과일을 쓰고 밀가루 대신 연근을 갈아 쑥전을 부치는 것도 스님만의 노하우.

# "벌레 죽일라" 냇물에서 나물 씻는데 불호령

씀바귀나물. 봄나물 부침개. 먹우겉절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때 깨끗한 재료를 고르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야 한다는 ‘청정(淸淨)’,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유연(柔軟)’, 법도에 맞게 음식을 만들고 먹어야 한다는 ‘여법(如法)’ 등 공양을 할 때는 삼덕을 지켜야 합니다. 음식 맛은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 쓴맛, 떫은맛 등 육미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94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면서 ‘사찰음식문화연구’라는 논문을 써서 사찰음식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스님은 출가한 뒤 지금은 입적한 한 노스님에게서 어깨너머로 사찰음식과 예절을 배웠다.

“흐르는 냇물에서 나물을 씻었는데 노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혹시라도 나물에 붙어 있던 벌레가 흐르는 냇물에 씻겨 내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에게도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이었지요.”

나물 삶은 물을 그냥 버렸다가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다. 세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쓸 수도 있고 툇마루를 닦고 난 걸레를 빨 때 나물 삶은 물을 쓰면 좋다는 것을 노스님에게서 배웠다.

# 아이들 떠난 자리에 맥주캔 담배꽁초 햅껄질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들을 절에 데려와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꼭 산중에 맥주 캔, 담배, 소시지, 햄 껍질이 한가득 나왔습니다.”

스님이 사찰음식 연구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이런 아이들을 보며 올바른 음식으로 인간의 심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안암동 보타사에 선재사찰음식연구원을 열고 유명세를 얻었지만 심신은 점점 쇠약해져 한동안 활동을 접었다.

“유명해지니까 피곤해집디다. 그래서 절로 되돌아가려다 그릇된 음식문화를 바로 잡는 것도 불제자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말았죠.”

선재스님은 지난해 10월 고향인 경기 수원으로 돌아와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031-243-2286)을 다시 열고 매주 1년 2학기제로 사찰음식 문화와 요리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 봄철 머위나물 식탁에 3번 안올리면 쫒겨나

스님은 머위나물을 간장, 식초, 깨소금, 고춧가루, 설탕 등의 양념에 버무린 겉절이를 소개했다. 줄기에 붉은 빛이 도는 게 자연산 머위나물. “스님을 시봉(侍奉)하는 상자(箱子)가 봄철에 머위나물을 3번 식탁에 올리지 않으면 쫓아내도 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머위나물은 전통 사찰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란다.

단맛이 나는 원추리 나물은 아이들도 좋아하는 봄나물. 늦봄에 다 자란 원추리 나물을 날로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꼭 삶아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신장, 간 등에 좋은 두릅은 끓는 물에 데쳐 배즙,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물김치를 만들었다. 돌나물과 더덕을 배즙, 고춧가루, 소금에 무치면 돌나물더덕물김치가 된다. 밀가루 대신 연근을 갈아 넣고 쑥전을 부쳤다. 연근은 단맛이 나 아이들도 좋아한다.

씀바귀는 삶아서 찬물에 식힌 뒤 초고추장에 버무려서 먹는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속설은 고기가 아니라 동남아 음식에 쓰이는 봄나물 고소를 말하는 것이고, 빈대는 속이 빈 고소 대라는 게 스님의 마지막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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