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야기

 
작성일 : 03-04-03 03:22
피카소, 뱀장어 스튜
 글쓴이 : 토토♬
조회 : 947  

    인생이란 화려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장엄하지도 않으며 다만 뱀장어 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을 조용히 끓여내는 것이 아닐까.....스튜 냄비 의 밑바닥처럼 뜨거움을 견디고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신이 조절한 타이머에서 종소리가 날 때 까지 말이다. 비인지 안개인지 모를 물 입자가 강 주위를 떠 다닌다. 이 비 오는 날, 멀리서 보면 집 안에 있는 그녀는 꽤나 아늑해 보인다. 부엌에선 삼계탕 끓는 소리가 자작자작. 빗소리에 잦아들고 있을 것이다. 소리 죽여 우는 여자의 흐느낌처럼, 격렬한 섹스를 끝내고 잠든 남자의 박 동소리처럼 고요히 끓고 있을 것이다. 삼계탕이 끓고 있는 동안 그녀 는 고즈넉한 평화로움에 젖는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은 모두 스튜 냄비에 안치구 서서히 고아 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제 집에 돌아온 것이다. 타이머에서 종소리가 난다..........권지예/뱀장어스튜 중에서
la matelote d' anguilles
    뱀장어스튜.. 피카소의 제일 마지막 화보에 실린 그림 이름이다.. 피카소가 제일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 쟈끌린이 만드는 요리라고 설명되어 있고 피카소의 여타 유명한 그림들 보다는 한없이 초라하고 지극히 평면적인 그림이라는 것.. 이 소설에서 화자는 웬지 쓸쓸한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고 표현을 했다..(쓸쓸한 감동..참 적절한 표현) 정열적이었던 만큼 많은 여자를 사랑했던 피카소.. 그가 노년에 그린 그림 뱀장어 스튜.. 이 사실 하나로 이미 하나의 상징이 형성된다.. 뱀장어스튜..그것은 정열적인 삶을 살다간 노년 피카소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화보의 끝장..마지막 여인 쟈끌린..스튜..그리고 살아 꿈틀거리는 뱀장어..뱀장어스튜는 불이 세서는 안되는 요리라고 했다.. 은근하고 고요한 화력으로 아주 오랜 시간 불을 지펴야만 먹을 수 있는 요리란 것이다..마치 우리나라 음식중 삼계탕이나 곰탕처럼.. 이렇게 뱀장어 요리와 피카소의 삶은 이 소설 뱀장어스튜 밑바탕에 깔린 배경그림이다..죽어가면서도 알을 까는 바퀴벌레와 덜 잘린 목의 닭..그 처절한 생명에의 의지와 경외스러움..동물원을 탈출한 원숭이 의 실종..그 속박에 대한 자유의지..치매에 걸린 후에야 첫사랑의 약속을 부르짖는 어머니의 묘사는 이 소설의 다양한 덧그림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조화 속에 뱀장어스튜(소설)의 요리는 점차로 완성되고 그 완성된 뱀장어스튜의 맛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사랑은 삶의 고귀한 동력이기에 틀림없다..하지만 가끔 그 사랑의 상처로 인해 지옥과도 같은 세월을 품고 살아야만할 때가 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 묻혀버리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견디기 힘든 아픔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그 삶의 상처에서 은연중 표현되는 숨은 파괴욕과 집착..그 애증의 치열한 투쟁은 어릴 적 바닷가 모래 사장에서 짓던 두꺼비집처럼 늘 불안과 공허함에 쫒기는 마음과 같다.. 그 공허함에서 막연히 도피만을 꿈 꾸고자 한다면 우리 삶에 해답은 없다..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마치 손에서 미끌어져 나가는 뱀장어와 같은 것..삶도 사랑도 어쩌면 긴 인내의 싸움일테니까.. 이 소설을 읽으니 마치 오래전에 읽은 저 유명한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가 생각난다.. 우리의 삶에 깃든 비극적 실존의 뜨거운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준 소설.. <뱀장어 스튜>의 그녀가 과거 속의 환상과 조금은 비현실의 몽환에 기대어 사는 촛불이 어울리는 여인이라면 <뜨거운 양철지붕>의 여주인공 마가레트는 모든 위기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양철지붕 에 버티려는 굳은 결심을 가진 태양이 어울리는 여인일 것이다.. 삶은 뜨겁게 달궈진 양철지붕 위에서 추는 잔인한 인내의 슬픈 무도.. 그 슬픈 춤을 추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주어진 숙명을 쉬 박차고 나올 순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인내의 형식,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질문인 것이다... 신이 준 마지막 시간까지 타오르는 삶의 열정과 실존에의 의지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청춘의 긴 강을 지나온 우리의 삶..이제 격정의 불꽃을 태울 시간은 지난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저 뱀장어 스튜를 만들 때처럼 은근 하고 고요한 화력이 필요할 때라는..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뜻일까.. 조금은 씁쓸한 맘이 들기도 하지만..

 
 


상호명: 행복한찻집 | 대표: 이창호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이창호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3동 1331-2번지 3층 | 무단이메일주소수집거부
Tel: 053-955-5465 | Fax: 053-955-5466 | kagyu@hanmail.net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사용